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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학에 관하여

지적학 7. 삼국시대 지적 제도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들(고구려, 신라, 백제)

by GrinH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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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학-삼국시대-지적-제도

1. 삼국시대

 

1) 고구려

지적 관련 부서로는 위지의 주부, 주서의 조졸, 수서의 조졸, 당서 '울절', 한원의 '울절'이라는 직책을 두어 도부 등을 관장케 하였으며, 지적 사무는 사자가 담당하였다. 국토를 조사해 수록한 봉역 도라는 지도와 1953년 순천군에서 발견된 '요동성총도'라는 고구려 고분 벽화가 있었다. 토지를 측량하는 데 사용한 자는 고구려 척을 사용하였고 토지의 면적 단위로는 경묘법을, 구장산술에 의한 '방전장'과 '구고장' 등의 면적 측량법을 사용하였다.

 

- 경묘법

'경묘법'과 '경무법'은 같은 말이다. 책들을 찾아보면 '경묘법'과 '경무법'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1묘를 1무로 읽어도 무방하다. 경무법은 중국에서 쓰던 토지의 면전 계산 단위법으로 토지의 '비옥도'와는 관계없이 고정된 면적으로, 7860평을 1경으로 한다.  조선시대, 토지의 비옥도(곡물 수확량)에 따라 척을 달리하여(비옥도가 낮을수록 척의 길이가 길어지고 비옥도가 높을수록 척의 길이는 짧아진다. 절대적 면적이 같아도 재는 척이 달라 작은 면적을 소유하고 있는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일이 허다하였다.) 토지의 면적을 측정했던 '결부법'과 달리 절대적 면적을 기준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각광받는 면적 측정 방법이었다. 마치 정전제와 같이 말이다.

 

- 봉역도와 요동성총도

'요동성총도'는 요동성의 모양을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벽화인데, 사실 측량과 지적을 기초로 제작된 문서가 아니기에 지적에서는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다. 오히려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현존하고 있다. 또 봉역도는 흙으로 쌓아 올린 약도의 수준으로, 현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존할 수 없는 구조의 약도다. 사실 넣을 것들이 너무 없다 보니 억지로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2) 백제

백제의 지적 관련 부서로는 6좌평 중 '내두좌평'으로 하여금 국가의 재정을 맡도록 하였으며 측량은 산학박사인 전문가로 하여금 기술 사무에 종사토록 했다. 또 산사화사 등의 전문직이 존재했는데, 토지 측량과 도면 제작에 참여하였다. 토지 측량에 의하여 오늘날의 지적 공부와 같은 도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길이의 단위로 을 사용하였다. 토지의 면적은 두락제결부제를 사용하였고 구장산술에 의한 면적 측량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근강국 수소촌 간전도, 능역도, 방위간지)

 

-산학박사, 산사, 화사, 도적

총책임자는 산학박사, 측량은 산사, 도면 제작은 화사가 된다. (책에 따라서 산학박사와 산사가 측량, 화사가 도면 제작이라고 쓰여있는 책도 있다.) 도적은 현재의 지적 공부이며 현존하지 않는다.

 

- 두락제

백제와 고려 중기에 사용되었던 면적 측정 방식으로 1두락 이란 "한 줌에 들어온 씨앗을 뿌릴 면적"을 뜻한다.

1두락은 약 120평에서 180평 사이의 면적인데 현대에 남아있는 논의 면적 마지기의 개념이 두락의 개념과 같다.

1두락=120~180평=1마지기

 

 

3) 신라

6부 중 조부에서 토지세를 파악토록 하였으며 국학에 산학박사라는 직책을 두어 토지 측량과 면적 계산에 관련한 지적 실무에 종사했다. 양전장적이라는 장부를 가지고 있었고 토지 면적 측량에 사용된 구장산술의 방전장은 방전, 직전, 규전, 제전, 원전, 호전, 환전, 구고전 등의 몇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길이 단위로 을 사용하였고 사방 1보가 되는 넓이를 1파, 10파를 1속, 10속을 1부로 하고 10부를 1 총, 10총을 1결로 하였다.

 

-양전 장적 (신라 장적 문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시대 이전의 유일하게 현존하는 지적 문서다.

 

-신라 장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특징 : 지금의 청주지방인 신라 서원경 부근 4개 촌락에 해당되는 문서이다. 일본의 동대사 정창원에서 발견되었고 3년간의 사망 및 이동 등 변동 내용이 기록되어 3년마다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적공부이고 국가의 각종 수확의 기초가 되는 장부이기도 했다.

 

기록 내용 : 촌명, 마을의 둘레, 호수의 넓이, 인구수, 논과 밭은 넓이, 과실나무의 수, 뽕나무의 수, 마전(인삼밭), 소와 말의 인구 수 등

 

주요 용어

- 관모 답전 : 신라시대 각 촌락에 분산된 국가 소유의 전답

- 내시령답 : 문무 관료전의 일부로 내시령이라는 관직을 가진 관리에게 지급된 직전

- 촌주위답 : 신라시대 촌주가 국가의 역을 수행하면서 지급받은 직전

- 연수유 답전 : 신라시대 일반 백성이 보유하여 경작한 토지이며 장적 문서에서 전체 토지의 90%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 정전 : 신라시대 성인 남자에게 지급한 토지권. 연수유 답전과 성격이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 마전 : 삼을 재배하던 토지를 4개의 촌락에 마전 면적이 거의 균등하게 기재되어 있다.(신라 시대에도 인삼은 주요 특산물)

 

-신라 장적에 기록된 토지의 형태 이외의 통일 신라 시대 토지의 분류

- 국가 직영지 : 정복 사업을 통하여 점유한 지역의 토지

- 왕실직속지 : 각 궁에 소속된 토지

- 사전 : 국가에 공훈을 세운 문무 관료에게 지급한 토지로 상속이 허용된다.

- 식읍 : 국가에 특별한 공훈을 세운 귀족 및 관료들에게 지급한 토지로 상속이 허용되지 않는다.

- 녹읍 : 신라시대 국가가 관료들에게 직무의 대가로 지급한 토지

- 사원전 : 불교 육성책으로 불교사원에 지급된 토지

- 국가 수조지 : 수조권이 국가에 있는 토지로서 농민에게 부여하고 농민은 국가에 대해 보건적 부담으로 조세를 부담하였다.

- 관료전 : 문무 관료들에게 지급하는 직전

- 정전 : 일반 백성에게 지급한 토지로 국가에 조를 바쳐야 했다.

(정전이랑 정전제에서 파생된 개념이라고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문으로 표현하면 井田 제와 丁 전이라고 쓰이며 의미와 그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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